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타카하시 요시노부 (문단 편집) == 기타 == * 현역 시절에는 나름 준수했던 외모 덕분에 여성 팬들이 많았던 선수이기도 했다. 커리어 초창기 때만 해도 잡지 표지모델로 나왔을 정도로 정말 잘 생긴 얼굴을 뽐냈고, 30대 중반부터 얼굴에 살이 붙으면서 후덕해지긴 했으나 현재도 호감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. ||[[파일:다카하시.jpg|width=300]]||[youtube(bTRIyJTAkTU)]|| || 현역 초창기 때의 사진 || 데뷔 3년차였던 2000년 당시 || * 현역 은퇴를 하자마자 곧바로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감독직에 올라서 그런지, 동년배 나이대에 현역 선수들이 아직도 몇 있는 편이다. 당장 같은 센트럴리그 [[주니치 드래곤즈]]의 1974년생 '''[[이와세 히토키]]보다 1살 어리며''', [[히로시마 도요 카프]]의 '''[[구로다 히로키]]와 1975년생 동갑'''이다.[* 다만 구로다는 75년 1월생이라 빠른 생일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론 구로다가 다카하시보다 '''한살 더 많다.''' 실제로 같은 대졸이지만 프로 데뷔도 구로다가 1년 먼저 했다.] 또한 이웃 퍼시픽리그 [[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]]의 [[마쓰이 가즈오]] 플레잉코치와도 1975년생 동갑. 옆 나라 [[KBO 리그]]의 1974년생인 [[이병규(1974)|이병규]], [[최영필]]보다도 한 살이 어리고, [[조인성(야구)|조인성]], [[손민한]]과는 1975년생으로 동갑내기이며, 요미우리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1976년생 [[이승엽]]보다 1살 많으며 앞의 이들이 대부분 은퇴한 2018년 현재 KBO 리그 최고령~~이자 최강동안~~인 [[박정진]]보다 1살 많다. 메이저리거인 1973년생 '''[[스즈키 이치로]]보다 2살이 어리고''', 과거엔 팀메이트 였다가 최근에 친정팀으로 복귀해 감독과 선수사이가 된 [[우에하라 고지]]와는 1975년생 동갑내기에 생일까지 같다. * 타카하시가 지휘봉을 놓은 2018년까지 거인군이 [[도쿄 돔]] 입주 이 후 세 차례[* 1회: 2006년 10월 10일 주니치의 센트럴 리그 우승/2회: 2008년 11월 9일 세이부의 일본시리즈 우승/3회: 2016년 9월 10일 히로시마의 리그 우승.] 원정팀 감독의 [[헹가래]]를 허용했는데, 세 차례 모두 현장에서 굴욕적인 장면을 목격한 흑역사가 있다. * 한국에서는 [[이순철]]의 아들 [[이성곤]]이 요시노부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담아 자신의 [[등번호]]로 요시노부의 현역 시절[* 여담으로 이성곤과 요시노부 2명 다 [[우투좌타]]의 [[외야수]]이다.]과 동일한 24번을 택했다는 사연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. * [[1997년]] 시즌에 피홈런 0개를 기록했던 [[선동열]]을 상대로, 그 이듬해인 [[1998년]]에 시즌 첫 피홈런을 뽑아낸 타자가 당시 신인이었던 [[타카하시 요시노부]]이다.[* [[1998년]] 4월 14일 [[도쿄돔]].] * [[이승엽]]의 한일통산 400호 홈런때 다음타자로 선발 출장했다. 하지만 8년뒤 [[오승환]]의 한일통산 300세이브 조공을 눈앞에서 봤다. * [[임창용]]이 일본프로야구 데뷔 후 첫 세이브[* [[2008년]] 3월 30일 [[진구구장]].]를 기록했던 경기에서, [[타카하시 요시노부]]를 상대로 삼진잡는 순간의 구속이 '''157km'''가 찍혀 당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. 참고로 [[임창용]]은 그 전에도 타카하시와 대결한 적이 있다. 바로 2003년 11월 [[삿포로 돔]]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아시아예선 때로, 당시에도 [[임창용]]은 타카하시를 상대로 '''150km'''를 뿌려, 중계해설을 맡았던 [[하일성]] 해설위원이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.[* '''150km''' 직구로 투스트라이크를 잡고, 그 다음에는 변화구를 결정구로 쓰면서 삼진을 완성했다.] * 프로입단 후에도 종종 국가대표로 발탁되었지만, 항상 4강에서 탈락하는 징크스가 있다. [[2001년]] 대만 [[야구 월드컵]]과 [[2004년]] 아테네 올림픽 모두 4강에 머물렀다. 특히 금메달이 유력했던 [[2004 아테네 올림픽|아테네 올림픽]] 당시, 4강에서 [[호주]]의 [[크리스 옥스프링]]과 제프 윌리엄스[* 당시 [[한신 타이거스]]의 좌완 필승조이기도 했다.]의 계투에 말려 0대1 패배를 한 건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.[* 이후 동메달결정전에서 캐나다에 승리하며 [[동메달]] 획득.] * [[월드베이스볼클래식|WBC]] 국가대표로 발탁된 적이 한번도 없다. * 2021년 4월 14일, [[도쿄돔]]에서 열린 [[요미우리 자이언츠]]와 [[주니치 드래곤즈]]의 경기에서 [[https://twitter.com/TokyoGiants/status/1382255475815632898?s=20|시구]]를 했다. [youtube(dSB7FdTjC2Y)] 시구식 영상 * 일본 인터넷상에서 도는 정보에 의하면 요미우리 입단 전에는 [[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]]의 팬이었다고 하며, 아버지의 빚 때문에 요미우리에 입단했다는 소문이 있다. 이 때문에 이를 믿는 요미우리 안티들로부터도 타카하시의 야구인생은 '불운전설'이라고 불리며 동정받는다. 어디까지나 루머라 반쯤은 드립. [[https://wikiwiki.jp/livejupiter/%E4%B8%8D%E9%81%8B%E4%BC%9D%E8%AA%AC| ]] [각주][[분류:일본의 야구 선수]][[분류:1975년 출생]][[분류:일본의 야구감독]][[분류:외야수]][[분류:내야수]][[분류:우투좌타]][[분류:주오구(치바) 출신 인물]][[분류:요미우리 자이언츠/은퇴, 이적]][[분류:원클럽맨]][[분류:일본의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]][[분류:2004 아테네 올림픽 야구 메달리스트]][[분류:1998년 데뷔]][[분류:2015년 은퇴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